처음엔 세이프워드가 뭐야, 그냥 다 말로 다 통할 수 있지 않나 싶었어. 막연히 '괜찮아', '다시 해봐', '그만해'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거든. 근데 실제로 처음 만난 사람과 플을 하다가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알았어.
그 사람은 내가 약간은 빠져서 올린 쪽지글에 반응해서 연락온 거였고, 일단 만나기 전까지는 꽤 조심스럽게 대화했어. 나도 몰라서 그런지 왠지 편하게 말을 걸던데, 상대의 말투가 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불안했지. 그래서 그때부터 "어떻게든 이걸 정확히 해야겠다"는 생각이 들었어.
결국 내가 고른 건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, 내 목소리가 이상해질 때를 위한 신호였어. 예를 들어 "내 목소리가 진짜 이상해보이면, 그때 바로 멈춰줘"라는 식으로 말이야. 그리고 그게 실현된 순간이 있었어.
첫 번째 경험은 사실 별거 없었는데, 어쩐지 무언가 기분이 안 좋았어. 손목을 잡고 계속 쥐었다가 놓았다 하는 게 반복되면서 점점 허리가 아프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어. 그때 내가 의식적으로 숨을 깊게 들이쉬려고 했는데, 왠지 목소리가 떨렸어. 그 순간 내가 미리 정해놨던 대로 말했어. “내 목소리가 이상해졌어.”
그 사람이 바로 멈췄고, ‘알았어, 괜찮아’라고 말하면서 내 손을 살짝 움켜쥐었어. 그 순간 정말 힘이 빠졌다고 해야 할까, 아니면 뭔가 훨씬 더 확신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. 그건 내가 아무리 난잡하게 허용했다고 해도, 결국 내가 끝내는 주체라는 걸 느꼈어.
그 이후로는 좀 더 본격적인 상황에서도 그 방식을 썼어. 특히 최근에는 한 명의 파트너와 함께 테스트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는데, 그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이프워드를 바꿔봤어. 그 사람이 원하는 건 물리적 제약보다는 감정적 지배였거든. 그래서 나는 ‘내가 눈을 감는 순간’이라는 신호를 만들었어. 실제 눈을 감으면 그게 멈추는 신호가 되도록 정했지.
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이 그걸 잘 이해하지 못했어. 처음엔 “눈을 감는다고 해서 왜 멈춰야 해?”라며 당혹스러워했고, 내가 설명하니까 “그럼 내가 보고 있어야 되는 거야?”라고 묻기도 했어. 그게 참 웃기긴 했지만, 동시에 중요한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. 세이프워드는 단지 ‘멈추는 방법’이 아니라, 상대가 내 상태를 인지하고 존중하도록 만드는 도구라는 걸.
그리고 지금은 거의 매번 플 전에 세이프워드를 직접 이야기하기보다는, 그 개념 자체를 이미 합의된 규칙처럼 녹여넣고 있어.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느낌이야. 예를 들어 “자기 마음이 안 좋으면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해” 같은 식으로. 간단한 동작인데, 그게 서로에게는 아주 큰 의미가 되는 거지.
요즘은 이런 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면서, 하나의 채팅 앱에서 자주 소통하는 사람도 생겼어. 거기서는 처음에는 오픈채팅을 통해 사귀기 시작했지만, 정작 더 깊은 연결을 만들기 위해선 약간의 필터링이 필요했어. 그래서 내가 찾은 건 바로 'SM톡'이라는 앱이었지. 거기서는 메인 채널보다는 비공개로 이루어지는 채팅룸이 있어서, 서로의 성향이나 세이프워드를 미리 공유할 수 있었고, 오픈채팅보다 훨씬 안전하고 신뢰감 있게 대화할 수 있었어.
처음엔 그게 그냥 또 하나의 도구인 줄 알았는데, 시간이 지나니까 그 안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지, 언제 멈춰야 하는지, 어떤 말을 해야 할지가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걸 느꼈어. 그게 다 세이프워드 덕분이었겠지.
지금은 내가 세이프워드를 말할 때마다, 그게 단순한 ‘그만해’가 아니라, 나 자신을 지키는 방어막이라는 걸 느껴. 그게 없으면 정말 무서워. 아무리 열정적이거나 몰입이 깊어도, 그 순간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아. 그런데 세이프워드가 있으면,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어.
그래서 이제는 그걸 그냥 말하는 게 아니라, 내 삶의 일부처럼 여겨.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, 내가 받는 보호막이라고 생각해. 그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, 진짜 말로 다 못 해. 다만, 누군가가 처음이라면, 세이프워드를 말하는 게 무서운 일이 아니라, 가장 먼저 해야 할 용기라고 믿어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