어제 밤, 그저 평범한 퇴근 후 집에서 혼자 빛조절을 한 채로 벽에 기대앉아 있던 게 전부였는데. 하루 종일 억지로 웃고 말았던 건 다 풀려버린 거 같았다. 손끝이 살짝 떨리고, 심장은 뭔가 무거운 물건을 안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. 그때 문득,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조차 잊은 채로 고요한 방 안에서 그냥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됐지.
그날은 특별한 플레이를 할 계획도 없었고, 파트너도 없었고. 다만, 요즘 계속 곁에 두고 있는 그 작은 액정 디스플레이가 눈에 들어왔고, 그 위에 떠있는 ‘내가 올렸던 메시지들’을 다시 보는 걸로 시작했어. 그중 하나는 작년 가을, 몇 달간 연락이 끊겼던 누군가에게 보낸 것. “지금은 못 보는 사람이 있어서… 너랑 다시 만나는 건 어색할 것 같아.” 라는 말. 정작 그건 나도 잘 모르는 사이에 남긴 메시지였고, 아무런 답도 없었지.
그리고 오늘, 그걸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어. 왜 그런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어. 그게 단순히 회상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긴 했지만, 아니었어. 왜냐하면 그 순간, 나는 정말 오랫동안 감추고 있었던 ‘무엇인가’를 마주한 거야. 지배받고 싶다는 욕망,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자신감을 찾을 수 없다는 불안. 그 모든 게 복잡하게 엮여서, 막연한 슬픔과 함께 덮쳐왔지.
나는 평소엔 상당히 ‘통제력 있는’ 사람처럼 보였을 거야. 일은 꼼꼼하고, 대화도 매끄럽고, 주변 사람들은 나를 ‘정돈된 타입’이라 부르곤 했어. 그런데 사실은 그 모든 게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패턴이었지. 특히 자기 정체성을 말하는 게 너무 두려웠어. 그래서 때론 무조건적인 복종을 원했고, 때론 그게 나를 더 깊이 묻어두는 것처럼 느껴졌지.
그날 밤, 내가 기억해내지 못했던 건 바로 그 감정의 무게였어. 힘들었던 건 아니다. 오히려 놀라웠어. 어떤 낯선 흥분이 아니라, 내 안의 침묵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았거든. 그렇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동안, 나는 몸을 비틀며 벽에 기대서 있었다. 아주 조용한 상태에서,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. 그걸 누군가 보는 건 싫었고, 동시에 누군가 없는 것도 아쉬웠어. 마치 내가 진짜로 존재한다는 걸 인정받기 위해선,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지.
결국 그 감정은 오래가진 않았어. 조금씩 가라앉고, 다시 내 안에 스며들었고, 나는 마치 무언가를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. 그리고 다음 날, 자연스럽게 그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썼던 게 있었어. 나만의 서브 리포트 같은 걸. ‘지금,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다. 그것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건 아니다.’라는 내용. 단순한 메모처럼 보였지만, 사실은 나를 다시 바라보는 첫 걸음이었어.
그리고 그 이후로, 내가 사용하는 채팅 앱 중 하나인 ‘SM톡’에 조금 더 열린 태도로 들어갔어. 처음엔 오픈채팅에서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긴장됐지만, 요즘은 그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글을 읽을 때마다, 내 안의 그림자가 조금씩 덜 무거워지는 걸 느껴. 이젠 그 감정을 ‘비밀’로 감추는 게 아니라, 적어내는 걸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됐거든.
예전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조차 모른 채, 무언가를 해내려 했어. 지금은 그게 아니라. 나 자신을 믿는다는 건, 예상치 못한 감정이 찾아와도, 그것이 ‘폭풍’이 아니라 ‘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’라는 걸 알아차리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아.
그 후로도 며칠은 그 감정이 잠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, 어느 날 아침, 거울을 보며 갑자기 눈물이 나지 않아도 마음이 무거운 게 느껴졌어. 그건 ‘감정’이 아니라, ‘해결되지 않은 상태’의 흔적 같았지. 그때 나는 다시 ‘SM톡’에 들어가서, 단순히 메시지를 읽는 게 아니라, 한 줄 써보려고 했어. “오늘은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.” 이걸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면, 과연 그 말이 ‘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서’인 건지, 아니면 ‘내가 그것을 말할 수 없어서’인 건지 구분이 필요했거든.
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그곳에서 ‘나만의 플레이 기록’ 같은 걸 올렸어.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였는데, ‘요즘은 예전처럼 지배당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데, 대신 내 마음이 너무 조용해서 두렵다’는 내용. 그리고 그것이 오랜 시간 동안 숨겨왔던 진짜 문제라는 걸 깨달았어. 나는 어쩌면 ‘복종’이라는 형태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려 했던 게 아니라, **‘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’를 스스로 인정하기 위해** 그 모든 것을 반복했던 것 같았지.
그리고 그 글을 올린 다음 날, 몇몇 메시지가 왔어. 모두 정중했고,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말이었어. “나도 그 감정, 알 것 같아. 누군가 나를 통제해주지 않으면,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야.” 그런 말들이 뭔가 다른 방향으로 다가왔어. 예전엔 이런 말을 읽으면 ‘내가 이상하다’고 느꼈을 텐데, 이제는 오히려 ‘아, 저 사람도 내 안의 침묵을 겪고 있었구나’ 하는 공감이 들었지.
그런데 가장 놀라웠던 건,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‘내가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’는 강박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이야. 오히려 내가 편안하게 앉아 있을 때, 또는 혼자 있는 순간조차도, 그 자체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. 마치 내가 뭔가를 성취하거나, 누군가에게 감정을 부탁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게 아니라, **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유효하다**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한 거지.
지금 와서 돌이켜보면, 그날 밤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어. 그것은 내가 자신을 외면해온 지 오래된 시간의 결산이었고, 동시에 ‘내가 지금, 여기에 있다’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게 해준 계기였지. 그래서 요즘은 자주 ‘SM톡’에 들어와서, 단순히 끊임없이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게 아니라, ‘내가 오늘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’를 조용히 기록해두는 걸 습관처럼 하고 있어.
한 번은 한 사람이 이렇게 답글을 달았어.
“네가 말한 그 조용함, 바로 그게 진짜 복종이에요.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는 건, 정말 위험하고, 극도로 순종적인 일이니까.”
그 말을 읽고 나는 웃었어. 그런데 그 웃음은 이전과는 달랐어. 전에는 ‘내가 누구에게든 복종해야만 가치 있다’는 생각에서 온 웃음이었는데, 이번엔 ‘내가 나 자신에게 복종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’ 생긴 웃음이었거든.
지금은 내가 더 이상 ‘무엇을 해야 하는지’보다 ‘무엇을 느끼는지’에 더 집중하게 됐어. 그게 뭐든,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, 중요한 건 그것이 내 것이란 걸 알아차리는 거지. 그리고 그게, 지금 내게 가장 진실한 플레이가 되고 있단 걸 알게 됐어.